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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화제의 드라마, 중증외상센터

by kiiwiie 2025. 4. 5.

중증외상센터 이미지

 

올해 초, 정말 아무런 기대 없이 보기 시작했던 드라마가 있다. 제목은 ‘중증외상센터’. 솔직히 처음엔 너무 무겁고 전문적인 소재 같아서 손이 잘 안 갔다. 의학 드라마야 워낙 많기도 하고, 대충 틀어놓고 보면 비슷비슷한 장면들—환자 들어오고, 수술하고, 의사들 갈등하는 식으로 흘러가잖나. 그런데 이 드라마는, 딱 첫 화 10분 보고 나서 느낌이 달랐다. 뭔가 숨이 턱 막히는 분위기랄까. 내가 응급실 한가운데에 던져진 것 같은 그런 몰입감이 있었다.

이 드라마가 특별했던 이유

‘중증외상센터’는 기존의 메디컬 드라마와 달랐다. 이전에도 여러 병원 드라마가 있었지만, 대부분은 수술 장면 위주 거나, 의료진 간의 사랑 이야기가 중심이었다. 그런데 이 드라마는 ‘응급의료 시스템’이라는 큰 틀 안에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하나의 사건이 벌어지면, 그걸 해결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움직이는지, 어떤 순서로 처치가 이뤄지는지, 그 과정에서 무슨 문제가 생길 수 있는지를 아주 세밀하게 보여줬다.

예를 들어, 교통사고 환자가 들어오면 곧바로 CT를 찍는 게 아니라, 의사가 외상 소견을 먼저 파악하고, 우선순위에 따라 검사를 지시한다. 그런 장면이 마치 다큐멘터리처럼 전개되면서도, 인물들의 감정선은 또 깊게 녹아들어 있었다. 주인공인 외상외과 의사 ‘정한’은 병원 내 권력 구조와 싸워가며 환자를 살리려 애쓰고, 전공의 ‘소은’은 매번 벽에 부딪히면서도 성장해 간다.

이들의 이야기가 단순히 드라마 속 캐릭터로 그려진 게 아니라, 정말 현실 어딘가에서 고군분투하는 의료인들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사실적이었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이 드라마를 ‘재미로’ 보기보다는, 매회 ‘어떤 이야기를 던질까’ 궁금해서 챙겨보게 됐다.

진짜 병원 같았던 세세한 연출들

가장 감탄했던 건 세세한 연출이었다. 의료 장비 소리 하나, 의사들이 환자에게 쓰는 용어 하나하나까지 실제 병원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느낌이었다. 특히 긴박한 상황에서 뛰어다니는 간호사들과 ‘트라우마 팀’의 움직임은 정말 살아있는 사람들의 모습처럼 느껴졌다. 대사도 그렇다. 쓸데없는 감정 과잉 없이, 정확하고 빠르게 주고받는 의료진 간의 대화는 오히려 더 큰 몰입감을 줬다.

게다가 이 드라마는 무조건적인 영웅담으로 흐르지 않았다. 외상센터의 의료진들도 결국 한계에 부딪힌다. 장비가 부족해서, 인력이 부족해서, 혹은 시스템이 엉망이라서… 아무리 환자를 살리고 싶어도 현실이 막아서는 순간들이 자주 등장했다. 그런 장면들을 볼 때면 괜히 마음이 울컥했다. 이건 단순한 ‘의사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사회가 직면한 구조적 문제를 조명하는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 번은 지방에서 헬기로 이송돼 온 환자가 있었는데, 정작 도착하자마자 수술실이 없어 대기하다 끝내 숨지는 장면이 나왔다. 그때 주인공이 했던 대사가 오래 기억에 남는다. “우리는 못 고친 게 아니야. 고칠 기회를 못 받은 거야.” 이 대사 한 마디가 이 드라마의 메시지를 압축한 것 같았다.

배우들의 연기도, OST도 훌륭했다

사실 이런 장르의 드라마는 배우의 연기력이 정말 중요하다. 그런데 ‘중증외상센터’는 전 캐스트가 거의 빈틈이 없었다. 특히 주연 배우 정해인의 연기는 진짜 놀라웠다. 원래도 연기 잘하는 배우였지만, 이번에는 완전히 ‘정한’이라는 인물로 살아 숨 쉬고 있었다. 감정 표현이 절제돼 있으면서도, 어떤 장면에서는 터질 듯한 분노나 절망이 그대로 전달됐다.

전공의 역의 배우 박지후도 좋았다. 그녀가 맡은 캐릭터는 늘 위기 속에서 갈팡질팡하지만, 그래도 결국 환자를 향한 진심으로 조금씩 나아간다. 이런 성장형 캐릭터는 연기력이 받쳐주지 않으면 설득력이 떨어지기 마련인데, 박지후는 감정선의 흐름을 아주 자연스럽게 표현해 냈다.

OST 역시 눈에 띄었다. 과하게 감정을 조이는 음악보다는, 때로는 완전히 무음으로, 때로는 심장 박동 소리나 구조 헬기 소음으로 감정을 이끌어냈다. 이게 어쩌면 더 강한 여운을 남겼다. 어느 순간, 브금이 없이 그저 병원 안의 소리만 들리는 그 정적 속에서, 시청자는 인물들과 함께 침묵하게 된다.

시청 후 오래 남는 여운

‘중증외상센터’는 끝난 지 꽤 됐지만, 지금도 생각이 난다. 어쩌면 이건 단순히 드라마가 아니라, 하나의 문제 제기였던 것 같다. 우리나라의 응급의료 체계, 지방과 수도권의 의료 격차, 과로에 지친 의료진의 현실… 이런 것들을 드라마라는 형식을 빌려 대중에게 조용히 물어본다. “당신이라면 이 상황에서 어떻게 했을 것 같나요?”

그 물음은 생각보다 오래 남는다. 그래서 나는 이 드라마를 단순히 재밌다거나 잘 만들었다는 말로만 설명할 수 없을 것 같다. ‘경험했다’는 말이 더 맞을지도 모르겠다. 시청자가 드라마 안의 인물들과 함께 울고, 분노하고, 무력감을 느끼고, 때로는 작은 희망에 기대어 웃을 수 있었던 그런 진짜 이야기. ‘중증외상센터’는 그런 작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