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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보는 1917 (명작, 전쟁영화, 몰입감)

by kiiwiie 2025. 4. 16.

1917 포스터
1917 포스터

 

전쟁영화라고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죠. 시끄러운 총성, 흙탕물이 튀는 참호, 날카로운 비명소리, 그리고 영웅적인 희생. 그런데 <1917>은 뭔가 다르게 다가와요. 이 영화는 전장을 보여주지만, 전쟁을 설명하진 않아요. 영웅을 내세우기보다 한 사람의 호흡과 시선, 감정의 결 따라 전장을 지나가게 하죠. 처음 볼 땐 숨을 참으며 봤고, 두 번째 봤을 땐 눈물이 났어요. 시간이 지나도 이 영화가 가슴 깊은 곳에 남아 있는 이유, 지금부터 하나씩 꺼내볼게요.

전쟁이 아니라 사람을 따라가는 영화예요 

처음 <1917>을 봤을 땐, 그 ‘끊기지 않는 화면’이 주는 몰입감 때문에 정신이 쏙 빠졌던 것 같아요. 한 장면도 놓치면 안 될 것 같은 긴장감. 관객의 시선을 계속 주인공 뒤에 붙잡아두죠. 정확히 말하면 이 영화는 ‘보는’ 게 아니라 ‘함께 걷는’ 영화예요.

줄거리는 아주 단순해요. 1차 세계대전 당시, 두 명의 영국 병사가 1600명의 생명을 구하기 위한 작전에 투입돼서 최전방에 직접 명령을 전달하러 가야 해요. 그런데 그 길이 너무 위험하죠. 시간은 없고, 장소는 전장이고, 언제 어디서 적이 튀어나올지 몰라요.

하지만 이 단순한 이야기 안에 사람 냄새가 가득해요. 두려움을 애써 숨기는 눈빛, 죽은 전우 앞에서 말없이 멈춰 서는 발걸음, 물 한 모금에 안도의 숨을 쉬는 순간들. 이런 작고 인간적인 디테일이, 영화를 훨씬 더 깊이 있게 만들어줘요. 전쟁을 다룬 영화지만, 전쟁 그 자체보다 사람 하나하나에 집중하고 있어요.

샘 멘데스 감독이 자신의 할아버지 이야기를 토대로 이 영화를 만들었다고 하잖아요. 그래서인지 영화 전체에 흐르는 분위기에는 묘한 진정성이 느껴져요. 그냥 잘 만든 영화가 아니라, 누군가의 기억을 빌려 재현해낸 느낌이랄까요.

전쟁영화인데 이토록 아름다워도 되나요 

<1917>은 정말 시각적으로 아름다워요. 물론, 배경은 폐허고 피와 죽음이 가득한 전쟁터지만 그 안에서도 어떤 시적인 미장센이 느껴져요. 특히 그 밤 장면 있잖아요. 불이 붙은 건물들, 불빛이 비추는 잿빛 도시, 그 속을 헤매는 병사의 실루엣은 마치 그림처럼 잊히질 않아요.

전쟁의 참혹함을 담았지만, 동시에 조용하고 서정적인 공기가 느껴져요. 그게 참 신기하죠. 이질적일 수 있는 두 요소가 충돌하지 않고 묘하게 조화를 이뤄요. 그건 아마도, 이 영화가 ‘전투의 스펙터클’보다 그 안에 있는 감정들을 먼저 잡아냈기 때문이에요.

영화의 색감이나 조명도 정말 세심하게 계산되어 있어요. 낮의 황량한 들판, 지하 벙커의 어둠, 새벽녘 안개 낀 강가까지, 모든 배경이 그 장면의 감정을 딱 맞게 담고 있죠. 그래서 시각적으로도 훌륭한데, 그게 단지 예쁘기 때문이 아니라 이야기를 더 깊게 느끼게 해주는 장치라서 더 좋아요.

그리고, 사실 <1917>의 진짜 감정은 말 없는 순간에 가장 많이 담겨 있어요. 무너진 집 앞에 혼자 앉아 우는 병사, 적진을 향해 달려가며 입술을 꼭 다문 얼굴, 이런 장면들에서는 대사보다 침묵이 훨씬 더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어요.

영화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경험이었어요 

이 영화를 보고 있으면, 어느 순간 내가 주인공 뒤를 따라 걷고 있다는 착각이 들어요. 아무 말도 안 하고, 조심스럽게 고개를 숙이고, 숨을 참고, 나도 같이 긴장하고 있어요. 바로 그 끊기지 않는 카메라 워크 덕분이죠.

이 영화는 화면 전환이 없어요. 모든 장면이 한 호흡처럼 이어지죠. 그 덕분에 보는 사람이 화면 밖으로 빠져나갈 틈이 없어요. 말 그대로 영화 속 안에 갇히는 느낌이에요.

사실 ‘원테이크 기법’이라는 게 자칫 잘못 쓰이면 오히려 산만해지기 쉬운데요, <1917>은 그 기법을 정말 잘 활용했어요. 장면마다 시점이 바뀌고, 시선이 이동하는 방식이 너무 자연스러워서 ‘연출’이라는 생각 자체가 들지 않아요. 그냥 내가 그 자리에 있는 것 같고, 그 현장을 겪고 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연기도 진짜 빛났죠. 조지 맥케이의 연기는 특히 대단했어요. 대사가 많지도 않은데, 눈빛 하나로, 숨소리 하나로 감정을 다 보여주더라고요. 마지막 장면에서 그가 나무 아래 앉아 눈을 감는 장면은… 뭐랄까, 참 오래 남더라고요. 전쟁이 끝났다는 메시지는 없는데도, 마음속에 무언가가 정리되는 기분이 들었어요.

1917은 한 번이 아니라 두 번, 세 번 봐야 해요 

처음 <1917>을 봤을 땐, 그 강렬한 몰입감에 정신이 쏙 빠졌어요. 두 번째 봤을 땐, 그 속에 숨어 있던 감정들이 더 깊게 보였어요. 그리고 지금은요, 이 영화가 단순한 전쟁영화가 아니라 누군가의 기억, 누군가의 고통, 누군가의 생존 이야기라는 걸 더 잘 알게 됐어요.

이 영화는 한 번 보면 기억에 남고, 두 번 보면 마음에 남아요. 그리고 세 번째부터는 그냥 그 속을 같이 걷게 돼요. 볼 때마다 새로운 장면이 보이고, 놓쳤던 감정들이 느껴지고, 처음엔 그냥 지나쳤던 대사 하나가 오래 머물기도 해요.

혹시 아직 <1917>을 보지 않으셨다면, 꼭 한번 보시길 추천드려요. 이미 보신 분들도 다시 한 번 보시면 완전히 다르게 느껴질 거예요. 이 영화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 깊이 남는 영화거든요.